[쥬시카노]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 [커미션]
쥬시(十四)마츠도 산쥬시(三十四)마츠가 되는 날이 왔다. 언제까지고 아이들로 남을 수 없는 우리는 어른이 되어야 했다. 그중 가장 빨리 어른이 된 사람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쥬시마츠였다. 그 뒤로 다들 꾸역꾸역 나이를 먹어갔고, 어른이 되어갔고, 어느새 서로 만날 약속을 잡아야 만나게 되는 사이가 되었다. 마츠노 가의 장남인 나, 오소마츠는 어느 날 쥬시마츠에게 연락을 받았다. 둘이서 술이나 한잔 하자는 연락이었다. 어차피 다른 녀석들도 휴일에는 딩가딩가 놀고 있을 텐데, 나만 부르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쥬시마츠는 좋아하던 사람과 헤어진 뒤로 사람이 무서울 정도로 변했다. 평소엔 하지도 않던 공부를 시작하더니, 갑자기 의대에 합격해버렸고, 기숙사에서 학교에 다닌다는 명목으로 집을 떠났다. 그 뒤로는 집의 밸런스가 무너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소란스러웠던 잠자리가 조용해지고, 목욕하는 시간도 조용해지고, 밥을 먹는 시간도 조용해졌다. 다들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쵸로마츠도, 토도마츠도, 카라마츠도, 이치마츠도 집을 떠났다. 다른 집을 구했다뿐이지, 본질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유일하게 집에 남은 형으로서는 섭섭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한참을 술자리에 나오지 않던 쥬시마츠가 연락을 하다니, 석연찮기는 해도 기쁜 마음으로 술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여어, 쥬시마츠. 꽤 오랜만이네."
쥬시마츠는 아니나 다를까 멀쩡한 정장 차림이었다. 그야 의사니까 당연한 거겠지. 혹시나 해서 기대했지만, 쥬시마츠는 그날 이후로 항상 그대로의, 평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만 조금 달아오른 채였다.
"어이쿠, 벌써 마시고 있었어? 형아가 그렇게 보고 싶었나 보네~"
나는 쥬시마츠의 맞은 편에 놓인 의자 위에 앉았다. 쥬시마츠는 몽롱하게 술병만 바라보고 있다가, 말을 꺼냈다.
"나, 차였어."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손님에게도 민폐가 될 테니,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시선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 가게, 어묵탕 말고는 어묵 종류를 안 파는구나.
"뭐? 누구한테? 누군데 의사를 차냐! 어엉? 형이 혼내줄까?"
"……그런 얘기는 아냐."
"아, 응."
나는 괜히 동조해서 흥분해줬다가 핀잔을 맞은 나머지,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 쥬시마츠는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우선 한 잔 마시고.
쥬시마츠는 의사가 되고 나서, 처음에는 선배의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성형외과였다. 돈은 꽤 잘 벌렸고, 그 선배도 쥬시마츠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 돈을 잘 챙겨줬다. 그런데 돈을 좀 모으고 난 뒤, 그 선배에게 떠나야겠다고 말했단다. 이제 떠나야겠다고.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고.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그 선배는 이해해줬다고 했다. 우리가 없어도 좋은 사람과 친구가 됐네, 쥬시마츠.
두 잔째. 실은, 성형외과 이외에도 다른 의학적인 지식도 계속해서 공부했다고 한다. 쥬시마츠의 목표는 의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여러 시골 지역에서 의료 봉사를 다니는 거였다. 치비타가 여기 있었다면 까고 있네~ 라고 소리 질렀겠군. 아무리 발전한 일본이라 하더라도, 문명의 최하한 선에 위치한 지역은 얼마든지 있었다. 쥬시마츠는 의료시설이 열악한 외진 곳을 위주로 방문진료를 다녔다. 그러면서 시골 지역들에 소문이 퍼지고, 방송에도 몇 번 나왔다고 했다. 쥬시마츠가 방송에 나오는 건 우리도 봤었기에, 여기까지는 우리 형제들도 모두 아는 얘기였다.
석 잔째. 여기서부터는 나도 모르던 이야기였다. 쥬시마츠가 방송에 출연한 이유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우리도, 부모님도 아닌 누군가. 역시 그녀였다. 쥬시마츠가 외진 지역을 위주로 돌아다닌 이유도 혹시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고, 의사가 된 이유도 니트가 아닌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그녀 앞에 서기 위해서였다. 쥬시마츠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그녀의 이름 몇 자, 지금 변했을지도 모르는 머리 모양과 주근깨, 그리고 웃는 모습뿐이었지만, 끊임없이 돌아다녔다고 했다. 어르신들에겐 항상 그녀에게 해줬던 개그를 하면서, 친숙한 의사로서의 이미지를 다졌다고.
넉 잔째. 그리고 드디어 일주일 전에 그녀를 우연히 찾았다고 했다. 그렇게 외진 지역에 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수소문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다닌 결과였다. 쥬시마츠는 급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중하지 않은 병에 걸린 그녀의 어머니를 무료로 진료해주고, 약을 처방해주고, 그렇게 떠났다. 그렇게 며칠씩 그 지역에 상주하면서 그녀의 어머니만을 봐 드렸다고 한다. 그녀와도 대화하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그녀는 통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쥬시마츠는 고백했다. 당신을 보고 싶었노라고, 10년째 당신을 찾았노라고, 그리고 지금 여기에 만나서, 너무나 기쁘다고. 쥬시마츠는 울었다. 그녀도, 우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은 쥬시마츠와 함께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쥬시마츠와 함께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그녀는 쥬시마츠에게 알려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쥬시마츠는 한 병을 다 비웠다. 나는 그 자리에 엎어진 쥬시마츠를 우리 집으로 데려와 재웠다. 쥬시마츠는 자는 척을 영 못한다. 이 이상의 얘기는, 묻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