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토모야는 문을 노크했다. 문 옆에는 제대로 초인종도 붙었고, 전자 도어락도 달린 평범한 문이었지만, 그라면 이 쪽을 좋아할 것 같았다. 그 히비키 와타루의 집이라기엔 입구부터 평범했다. 자신의 집과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토모야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천장과 바닥이 뒤집혀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오오, 토모야 군! 역시 놀라울 것 없이, 시간에 맞춰 오셨군요!"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그거야? 변태 가면."
와타루가 졸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유메노사키에 신입생이 들어오기 전인 봄방학이었고, 토모야는 곧 2학년이 된다. 와타루는 졸업하고 나서 소식이 없었는데,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갑작스레 토모야에게 연락을 해왔다.
"토모야 군도 만나자마자 그렇게 대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의 저는 가면을 쓰지 않았는데도요!"
"변태 가면이 변태 가면이지, 그럼 뭐라고 부르란 말이야?"
"어쩜 1년이 지나도 변하질 않는지!"
"됐고, 호쿠토 선배는 일이 바빠서 못 온다고 했어."
언제나의 그처럼 화려한 포즈를 지으며 웃던 와타루는 돌연 움직임을 멈추고, 턱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라면 일이 바쁠만도 하지요. 그도 이제 어엿한 유메노사키의 최고 학년이니 말이죠."
"1년이 지나니까 더 멋있어졌어. 나도 일이 있으면 안 오고 마는 건데, 우리는 아직 정비기야."
멤버가 전원 3학년이 된 트릭스타는 강력한 유닛으로 거듭났다. 3학년들이 졸업한 다른 유닛에 비해 방학에 일감이 많이 들어와서 눈코뜰새 없이 바빠졌고, 그러면서 그들은 점점 강해질 터였다. 반면에 라빗츠는 아직 나즈나가 빈 자리가 허전하기만 했다. 개개인의 기량은 확연히 늘어났지만, 이 기량을 조율하는 건 스스로의 몫이 됐다.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신입을 받을 때까지는.
"그래도 핑계를 대지 않고 와주셨군요! 호쿠토 군의 부재는 예상했습니다. 물론 토모야 군이 오리라는 것도! 자, 들어오시죠. 히비키 와타루 유일의 처소에."
와타루는 토모야를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토모야는 평범하게 신발을 벗고, 실례합니다, 라고 말하며 와타루의 집에 들어섰다. 평범한 복도였다. 방들이 평범하게 복도를 두고 이어졌고, 어디 하나 이상한 점이 없었다. 그야말로 사람이 살 법한 집이었다.
"토모야 군, 신경쓰이는 점이라도?"
"아, 아뇨. 혹시 남의 집에 들어온 건 아닌가 싶어서."
"이 집이 히비키 와타루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인가요?"
"그, 그건… 아니겠지만……."
"아뇨, 맞습니다! 이 곳은 엄밀히 말하자면, 저의 집은 아니지요. 저의 소중한, 가족의 집이랍니다."
"놀랐잖아. 난 가택침입이라도 한 줄 알았어."
"후후후, 범죄는 저지르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길."
와타루는 토모야를 거실로 안내했다. 거실 역시 이상한 점 없이, 안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등을 기댈 푹신한 소파, 바닥에 깔아둔 부드러운 깔개, 추우면 몸을 덮을 이불까지 부족한 것이 없었다. TV와 앉는 곳까지의 거리까지도 적당해서, 이 거실이 영화 시청을 위해 설계된 것처럼 느껴졌다.
와타루가 토모야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함께 영화를 한 편 보기 위해서였다. 평소에도 영화를 자주 보는 두 사람이었지만, 와타루가 토모야를 불러서, 함께 보자고 한 건 처음이었다. 애초에 와타루가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토모야는 놀라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를 걱정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정을 취소하고서라도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토모야는 와타루가 간식 거리를 준비해 오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집을 구경시켜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와타루가 토모야를 부른 이유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한번 온 곳에 다시 못 오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다음에 와타루의 가족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으며 집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토모야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와타루를 상상하며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이 안 계신 건가? 거실 외의 방은 모두 불이 꺼진 상태였다. 토모야가 올 때까지 와타루는 혼자 있었던 셈이 된다. 조금 일찍 올걸. 토모야는 살짝 후회했다.
"기다리셨군요, 토모야 군!"
"아, 뭐. 네."
"마실 것은 코코아가 좋습니까? 아니면 차?"
"코코아로."
"네, 여기 있습니다."
"어, 미리 타온 거예요?"
"그럼요. 토모야 군이 무엇을 원할지 정도는, 훤히 꿰뚫어보고 있으니까요."
"졸업을 해도 변하질 않네, 당신."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요."
와타루는 자신의 컵을 들고, 간식 거리를 토모야와 자신의 사이에 두었다. 각종 과자가 수북이 쌓여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집어먹으면 접시가 빌 정도였다.
"왔다갔다할 필요가 없겠네요. 양이 적당해서."
"네. 다만, 2인분을 계량해야 했기에 조금 고민했습니다. 토모야 군이 얼마나 먹을지 정도는 예상했지만! 그걸 손으로 덜어내는 건 다른 일이니까요. 자, 화장실이라도 다녀오죠. 영화의 중간에 일어서면 곤란하니까요."
두 사람은 차례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손을 깨끗이 씻고, 이제는 정말로 영화를 볼 차례. 와타루는 DVD를 꺼내 재생했다.
"어라, 변태 가면. 영화를 볼 때는 50음도의 순서로 본다고 하지 않았어?"
"네, 분명 그렇게 얘기한 적도 있었죠."
"뭐야, 그 애매한 태도는. 아무튼 이 영화, '아'로 시작하잖아. 처음으로 돌아간 거야?"
"돌아갔다기 보다는, 토모야 군과 함께 영화를 보는 일은 처음이니 말이죠. 그러니 영화의 순서도 처음으로 두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그렇구나. 아,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했다.
히비키 와타루는 히비키 와타루였다. 그의 행동이, 조금 꺼림칙했지만. 일단 자신을 놀래키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일상적인 행동에, 히비키 와타루를 조금 섞어둔 듯한 느낌이었다.
아, 부모님이 지금 안 계시냐고 묻는 것도 깜빡했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도 잊어버렸어. 영화가 끝나면 물어봐도 되겠지만, 난 영화가 끝나면 돌아가야 하니까 타이밍이 맞지를 않네. 다음에 다시 부르면 찾아오면 되겠지. 과자를 한 움큼 집어먹자, 와타루도 한 움큼 과자를 가져갔다.
영화의 색감은 형형색색이었다. 어두운 거실이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광경은,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보물이다. 비록 타인의 집이지만, 이 일상의 공간이 몽환적으로 변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와타루가 집에서 홀로 영화를 보는 이유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이 집에, 기이함을 조금이라도 불어넣고 싶어서일지도 몰랐다.
토모야는 지금 만족하고 있었다. 편안한 자리, 오랜만에 만나는 선배, 재밌는 영화. 그런데, 이렇게 즐거워도 되나? 와타루를 위로해준답시고 왔는데, 오히려 자기가 아이돌의 압박감에서 조금,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제딴에 나를 위로해주겠다고 부른 건가? 이거, 괜히 걱정해줬네.
영화는 꽤 길었다. 러닝타임은 두 시간 정도였지만, 영화에 몰입감이 있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킬링타임용으로도, 생각할 점이 많은 영화로도 보일 수 있었다. 와타루도 토모야도, 나름의 판단을 위해 진지하게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눈에 담았다. 이 영화가 끝나고 나면, 서로 감상을 나누려나? 이 장면은 좋아할 것 같으니까, 기억해뒀다가 말해주면 좋아하려나. 뭐, 이 사람은 예상했습니다! 라고 웃기는 하겠지만.
영화가 끝나도, 부장과 더 같이 있을 수 있겠구나.
영화가 끝났다. 집에서 볼 때는 크레딧이 흐를 때도 불을 켜지 않으니까 마지막까지 여운에 잠길 수 있다. 토모야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과자를 집으려 손을 뻗었다. 그런데, 아직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과자는 여전히 토모야의 손에 잡힐 정도로 남았다. 크레딧이 전부 내려갔다. 화면이 검게 변했다.
"부장? 영화 끝났어요. 불, 켜도, 되는데……."
그 순간 마시로 토모야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도했다. 히비키 와타루는 여전히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이었다. 그가 무대 위에서밖에 흘리지 않는 그것이었다. 언젠가 한 번, 그 이외의 경우가 있었지만 그것 역시 연기인지 아닌지 토모야는 알지 못했다. 그럼 이 눈물 역시, 그의 연기일지도 모른다.
"뭐하는 거예요, 부장. 안 놀란다구요?"
"어라, 무슨 말씀입니까 토모야 군? 잠시 여운에 빠져 있었을 뿐이랍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 우는 척하고 있잖아?"
"……네? 이 히비키 와타루가 울음을?"
와타루는 오히려 되묻고는, 자신의 볼을 더듬었다. 분명 따뜻한 것이 훑고 지나간 흔적이 있어, 턱에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이거, 실례를 범했군요."
"어? 진짜로 우는 거였어? 영화가 그렇게 감동적이었나? 그런 종류였나……?"
"아뇨, 다른 종류입니다. 이건 이 히비키 와타루의…… 미천한 모습이죠."
"정말로 무슨 일 있었어? 도움이 필요하다면야, 말하면 되는데. 같은, 동아리였고."
"아아, 연극부. 저의 왕국……. 그렇습니다. 저는 그리워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워 해? 당신이?"
"부정하고 있었습니다만, 달라지는 건 없군요. 저는 지금, 사랑을 앓고 있답니다! 사랑스러웠던 과거에, 유메노사키에, 과거의 왕국에!"
"하지만 졸업했는데…… 진로는 확실하잖아? 부장이라면 연극계에 얼마든지 진출할 수 있잖아. 벌써, 계약도 했다고 들었고."
"후후후, 토모야 군. 아무리 저라도, 아직은 10대입니다. 이 세계는 히비키 와타루의 세계는 될 수 없더군요. 저는 이 세계에 적응해 가야 합니다. 좀 더 많은 무대에 서기 위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이어지기 위해……."
"부장, 당신……."
"커뮤니케이션이란, 참으로 어렵더군요. 사람 대 사람으로, 평범하게 친해지는 법을 잊고 있었습니다. 수영하는 법도 모르고, 물 위에서 허우적댈 뿐이었죠. 너무나 지쳤던 겁니다. 하지만 토모야 군과는, 이렇게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고, 함께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 그런 말해도 기쁘진 않아!"
토모야는 이불을 끌어당겼다.
"단순히 제 감상일 뿐이랍니다? 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죠."
"다른 이유?"
"토모야 군은, 이제 돌아가야 하니까요. 오늘 가족들은 돌아오지 않는답니다. 아마 토모야 군이 돌아가면, 저는 계속 영화를 보겠죠. 아침이 뜰 때까지…. 내일은 공교롭게도 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아쉽군요. 이대로, 토모야 군을 보내는 건."
와타루는 다시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토모야는 크게 당황해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와타루는 과자를 한 움큼 집어먹었다.
"아아, 너무 이야기를 해버렸군요, 그럼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토모야 군. 정말 즐거웠어요. 잊을 수 없는 시간일 겁니다. 그리고, 고……."
"남을게!"
"……네?"
"내일 일정 없댔지? 마침 잘 됐네. 나도 없어! 이제 2학년이니까, 부모님에게 연락해서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간다고 할게. 둘이서 실컷 영화를 보자. 그리고 다음에도, 시간이 나면 찾아올게. 아니면 부장이 우리 집에 와도 좋아."
토모야는 해결책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어, 신나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와타루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오히려 슬픈 눈으로, 토모야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저를, 동정하는 건가요, 토모야 군?"
"으응? 아, 아니. 그게, 나도 이렇게 돌아가긴 좀 그렇고."
"저는 추락했습니다. 정확히는, 다시 날아오르기 위한 준비지만요. 그런데 발돋움을 하기 위한 땅은 너무나 질척거려서, 제대로 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저를 위로해주면, 평범한 토모야 군은 온 몸에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버릴 겁니다. 저는,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부장. 당신은 인간이잖아?"
"인간…… 네. 저는 인간이죠. 새도, 토끼도 아닌 인간."
"그러니까 나도 같은 인간이야. 당신이 과거에는 기인이라고 불렸어도, 지금은 힘든 거지? 그럼 진흙 정도야 조금 나눠도 괜찮잖아. 당신이 저 하늘에 있어서 내가 숨이 막히는 것도 아니니까. 얼마든지 떨어버릴 수 있는걸? 나도, 조금은 성장했어. 사람은 누구라도 좌절하고, 떨어지기도 해. 당신은 기인이니까 익숙하지 않은 거지.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세상이야. 돕게 해줘. 부장."
와타루는 토모야의 말을 듣고는 벙쪄 있었다. 이윽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왜 웃어?!"
"앗핫핫핫하! 제가, 토모야 군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놀랍군요! 그야말로 Amazing☆ 좋습니다. 토모야 군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제가 봐드리도록 하죠. 오늘 밤은, 당신과 나만이 있는 세상입니다. 토모야 군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하아, 물론이지. 얼마든지."
"그럼 과자를 더 가져오죠. 중간에 졸리다면 언제든지 이불을 덮고 자도록 하세요. 손을 댈지도 모릅니다."
"소, 손을 대……?"
"물론 농담입니다! 놀라셨군요! 뭘 기대한 건가요, 토모야 군? 저는 궁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답니다!"
"시끄러워! 빨리 과자 가져와!"
그날 밤, 와타루의 집 거실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들은 웃고, 떠들고,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정말로, 즐거운 밤이었다.
'앙상블 스타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미션] 희망보다도 깊은 것 (0) | 2016.03.26 |
---|---|
[Knights] 재가 되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야기 (0) | 2016.02.24 |
리츠마오의... 그것... (0) | 2016.02.09 |
WRITTEN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