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 되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야기
written by 지교(@Ansanblue_Zigyo)
*죽음소재가 있습니다.
*리츠마오, 아라안즈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사라 마오의 장례식이 있었다. 사쿠마 리츠는 장례식에 나오지 않았다. 비교적 늦은 시간에 장례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쿠마 리츠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장례식의 시간은 분명 그의 참석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절차가 끝나감에도 방명록에는 그의 이름이 적히지 않았다.
그를 제외한 유메노사키의 모든 아이돌과 학생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러 장례식에 참석했다. 꿈과 희망을 전하는 아이돌을 목표하는 학생들에게 검은 옷은 썩 어울리지 않았다. 그 위에 반짝이는 유닛복을 입어야 할 Knights도, 오늘은 검은 반팔만을 입었다.
리츠를 찾아보자는 안즈의 요청에 따라, 안즈와 Knights는 사쿠마 리츠의 행방을 찾기 위해 나섰다. 트릭스타는 장례식장에 남아 기다리기로 했다. 각자 유메노사키 학원, 리츠의 집, 마오의 집 등 리츠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저녁에 시작되었던 장례식은 하늘에 달이 떠오를 때까지 끝나지 못했다.
-
"친우의 영혼을, 이대로 보낼 셈이느냐?" 사쿠마 레이가 말했다.
"왜 다들 그런 말을 해?" 사쿠마 리츠는 의문을 표했다.
"마-군이 죽었다니... 그럴 리 없잖아." 그 말에 레이는 한숨을 쉬었다.
사쿠마 리츠는 이사라 마오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오늘은 마-군이 안 깨워주면, 안 일어날 거야."
리츠는 그리 말하며 관 속에 누웠고, 사쿠마 레이는 그 옆을 지켜주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레이는 무심코 리츠의 이마를 쓰다듬으려다 손을 거두었다.
"……시끄러워졌네."
사쿠마 리츠의 감각은 여느때보다 민감했다.
"오호라, 너의 소중한 동료들도, 잠을 방해하면 용서치 않는 게로구나."
레이는 관 속에서 잠을 청하는 자신의 동생을 보며 웃었다.
"지금은… 좀 내버려둬. "
리츠는 그렇게 말하며, 잠들고 싶다는 듯 다시 눈을 감았다. 저 멀리서 츠키나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관의 입구를 닫아둔 뒤 경음부실에서 나왔다. 레이는 경음부실에서 최대한 멀어졌다.
"츠키나가 군인가…… 송곳니가 꺾인 사자라 해도 이길 수 있을지, 잘 모르겠구먼."
레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달을 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밝게, 그리고 붉게 빛났다. 흡혈귀의 눈은 달빛을 받아 붉게 반짝였다.
"아아, 멀어지는구나. 앞날의 반짝임이……."
-
"인스피레이션이 솟아오르…지만, 나중으로 미뤄둘까♪"
"사자(死者)에게 실례입니다, Leader."
"알고 있으니까 릿츠를 함께 찾아주고 있잖아?"
"하긴, 의외였죠. Leader가 동참해줄 줄은."
Knights는 유메노사키 학원 앞에 모였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리츠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리츠가 갈 곳은 별달리 없을 것이다.
"쿠마 군의 집에는 없었다고 전학생이 그러던데. 그렇다면 역시 여기뿐이지. 가출할 녀석은 아니니까."
"편안한 잠자리를 찾고 있을지도?"
레오는 일렬로 선 Knights의 기사들의 앞에 나섰다. 주변에 키를 받쳐줄 기물은 없었지만, 레오는 그 자리에 서서 Knights를 내려다보는 듯 했다. 그의 눈은 또다른 영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자, 그럼 여기서부터 다시 마음껏 개인주의다, 나의 Knights! 동료의 긍지를 위해, 맘껏 몸을 놀리고 날뛰도록 해!"
그의 말과 동시에, Knights는 유메노사키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럼, 다들 갔으니까."
레오는 유메노사키의 안으로 빠르게 뛰어들었다. 그는 갈 길을 정했다. 언제나 걸어왔던 길이었다. 그의 발자국은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왔다. 항상 Knights를 위해 걸었다. 발에 채이는 돌은 걷어차고, 벽은 쓰러진 자와 쓰러뜨린 자의 등을 밟고 뛰어올랐다. 밟을 것이 없다면, 무능한 동료마저 도움닫기로 썼다. 오직 자신의 다리로 걸었다.
그 길이 종지부에 가로막힌 뒤로는 주저앉았고, Knights가 일으켜주었을 때는 그들의 어깨를 의지해 걸었다.
그 어깨에 조금만 더 기대고 싶으니까, 잠시만 다리를 움직이게 해줘.
"……여기는 어떻게 알았누, 츠키나가 군?"
"넌 항상 피 냄새를 풍기고 다녔거든, 레이."
경음부실에서는 꽤 떨어진 복도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으로, 고요했다. 레오는 양팔을 허리에 얹었다.
"요즘은 토마토 냄새가 더 진하지만 말이야! 핫핫하☆"
"크크, 냄새를 흘려버렸구먼."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하고 한참을 웃었다. 울리기 시작한 빗소리가 음산하게 섞였다. 그리고 천둥이 창문을 때리자, 약속한 듯이 웃음을 멈췄다.
"그런다고 죄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아. 알고 있잖아? 너도, 나도."
레오의 눈동자가 레이의 눈동자에 붉게 비쳤다.
-
"이상하지 않습니까?"
츠카사, 아라시, 이즈미가 유메노사키의 여러 곳을 수색하고 돌아온 자리였다. 각자 찾아본 곳에 관해 의견을 나누던 도중, 츠카사가 말했다.
"어디가 이상한 거니, 츠카사쨩?"
"아뇨, place가 이상한 게 아니라, 어색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뭘 말하는 건데? 질질 끌면 짜증 나거든~?"
"그게……, Leader의 목소리가, 들리질 않아서."
아라시와 이즈미는 어리둥절하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게 이상하다고? 혹시 카사 군, 청력에 자신 있어?"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Leader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Loud한 소리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소리는커녕, 말소리조차 들리질 않았습니다."
"흐응, 그래서… 결론은?"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좋아, 이의는 인정할게. 하지만 그걸로 끝나면 안 되겠지?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알겠어?"
"그것까진, 아직."
이즈미는 한숨을 쉬고는 팔짱을 꼈다.
"그럼 다음부터는 해결책까지 생각한 뒤에 말해. 어울려주기 힘드니까."
"이즈미쨩, 후배를 너무 몰아세우면 나쁜 선배라구? 그리고, 덕분에 감잡지 않았어~?"
아라시의 말에 이즈미는 조금 투덜거리더니, 입을 닫았다. 오카마 후배주제에, 라고 중얼거린 것 같기도 했다. 아라시는 이즈미를 잠시 신경쓰다가 츠카사를 향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서 생각하는 게 낫잖아? 머리를 모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그런데 나루카미 선배. 감을 잡았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아~ 이즈미쨩은 수세에 몰릴 말은 잘 하지 않으니까. 만일 츠카사 쨩이 반론해도, 답을 준비하지 않았을까해서. 그렇지 않아?"
"남의 속을 그렇게 들여다 보면 짜증 난다고, 나루 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럼 세나 선배는 Leader에게 생긴 문제를 눈치챈 건가요!"
"쿠마 군을 찾았겠지."
츠카사와 아라시의 눈이 싸해졌다.
"……왜 그렇게 쳐다봐? 불만이라도?"
"세나 선배의 말대로라면, Leader는 리츠 선배를 빠르게 찾아냈다는 건데, 왜 연락을 하지 않은 거죠? 우리가 흩어진 것도, 효율적으로 리츠 선배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나요?"
"어쩌면, 우리를 흩어 놓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을지도 모르지."
"어째서 그런 짓을!"
"글쎄, 임금님의 안 좋은 버릇이 나온 걸지도."
"안 좋은 habit입니까?"
"이즈미쨩의 말대로면, 위험하지 않아?"
"그렇지. 우선 임금님이 어디에 있을지 알아내야 하는데, 그게 문제."
츠카사는 우선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레오는 어디로 갔는가, 레오가 리츠를 찾았다면, 리츠는 어디에 있었는가. 레오의 좋지 않은 버릇과, 그의 목적. 단시간에 결론지어야 할 생각들이 어지럽게 섞였다. 모두가 고민에 고민을 이을 즈음, 츠카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혹시, 경음부실에는 가보셨나요?"
"난 안 갔는데. 나루 군은?"
"나도 안 갔는걸. 그야, 경음부실에는……."
"리츠 선배의 형님이 계시죠."
"쿠마 군은, 일단은 자기 형을 싫어하고 말이지. 근처에도 안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그래도 형제입니다. 가장 먼저 기댈 상대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츠카사의 말에 아라시가 살짝,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읏, 제가 틀린 말이라도…?"
"아아, 아니. 츠카사쨩, 아직 어리구나~ 싶어서. 형제도 없고. 나이가 들고 나면, 알게 되겠지만 말이야? 형제는 그렇게 쉽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냐."
"그렇……습니까?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개인차는 있겠지만 말이지? 지금 논쟁할 시간은 없으니까, 우선 츠카사쨩의 말대로, 경음부실에 갈까? 다들 안 가본 것 같고, 츠카사쨩이 열심히 생각해줬고♪"
이대로 이야기를 끝내기 아쉬운 듯 츠카사가 더 말하려고 하자, 아라시의 전화가 울렸다. 안즈의 연락이었다. 리츠의 집에도 마오의 집에도 리츠는 없었다. 그리고, 리츠의 집에는 레이도 없었다는 전언이었다. 츠카사의 눈이 반짝였다.
"연락 고마워, 안즈쨩. 이쪽도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았고… 아, 이제 이쪽으로 와줄래? 응, 알았어. 이따가 봐~."
아라시는 전화를 끊었다.
"저, 누님은 왜 부르신 거죠?"
"그냥 보고 싶었던 거 아냐? 사심이 깊어, 나루 군."
"너무 추궁하지 말아줘~ 소녀의 마음은 복잡하니까~!"
"시끄러워. 급하니까 사담 금지."
이즈미는 곧바로 뛰어나갔다. 아라시와 츠카사도 뒤를 따랐다.
"…나루카미 선배, 아까의 이야기말입니다만."
"응? 아아, 아깐 나도 감정이 조금 복잡했나봐.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아줘~."
"네, 그럴 생각입니다만…… 꼭, 형제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뜻이야?"
"항상 자신을 믿어달라고, 힘들 때면 기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라면, 형제가 아니라도 찾아가게 될 겁니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란,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아라시는 리츠에게 그 1순위가 레이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리츠가 가장 의지했던 사람은 그의 소꿉친구인 이사라 마오였으니까. 사쿠마 리츠는 이사라 마오를 좋아했다.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아는 아라시였기에, 츠카사의 말에 절반 정도는 동의했다. 단지 레이가 리츠에게 2순위였을 뿐이다. 레이가 이용해먹기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리츠가 경음부실에 있다면, 그의 형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면,
리츠는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 걸까?
세 사람은 경음부실 앞의 복도에 섰다. 복도에는 주홍빛의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었고, 이상하게 시큼한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이즈미는 안쪽의 동태를 잠시 확인한 뒤, 곧바로 문을 열었다.
경음부실은 달빛 한 줄기가 내리쬘 뿐인, 적막에 감싸여 있었다. 빗소리가 내내 창문을 두드렸다. 그 중심에 놓인 관이, 조금씩 흔들린다.
"리츠 선배!"
츠카사가 황급히 뛰어가 관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달빛을 받아, 붉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는 사쿠마 레이가 있었다. 은은하기만 했던 달빛은 그에게 닿자마자 사람을 떨게 하는 몽환으로 변했다. 츠카사는 그 아름다움에 놀라, 뒤로 넘어졌다.
"……리츠가 아니라, 미안하구먼."
"흐이익?!"
"카사 군, 진정해!"
"진정했습니다! 리츠 선배의 머리가 길어졌을 뿐……!"
"형제라서 닮은 건 이해하지만, 리츠쨩의 형이라구!"
"아……!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보다, 좀 일으켜주지 않겠누? 힘이 다 빠져버려서 꼴이 말이 아니니."
츠카사는 레이의 팔을 잡아당겨 그를 일으켰다. 레이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눈을 질끈 감고서, 나이츠를 향해 단언했다.
"너희들의 왕이, 리츠를 데려갔다."
"저희가 올 때까지, 버틸 수는 없었던 겁니까?'"
"츠키나가 군은 일찍 찾아왔네. 나를 상대할 대책도 생각해둔 모양이었지. 나는, 형으로서의 자격이 없네. 리츠를 지켜줬어야 했는데, 리츠의 작은 부탁 하나 들어주질 못했어."
"당신이 우리 임금님한테 진 건 관심 없거든. 오히려 기쁜데. 그래서 우리네 임금님이 어디 갔는지는 알아?"
"이즈미 군은 냉정하구먼. 그래, 사과는 모든 일이 끝나고 해도 늦지 않겠지. 지금은 리츠를 구하는 게 급선무일세. 츠키나가 군이 어디로 가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예상은 하고 있네."
"그러니까 말하란 말이야, 이 할……!"
아라시가 이즈미의 입을 막았다.
"부탁합니다! 부디, Leader가 계신 place를!"
"그는, 계속해서 리츠는 자신의 Knights라고 말했네. Knights로서의 기사도를 가르쳐주겠다고도 말했지. 리츠가 계속 이 상태라면, Knights가 기우뚱하는 건 시간 문제일세. 츠키나가 군도 그걸 알고, 리츠의 마음을 돌리려 하겠지.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분명, Leader는 강단이 있다는 느낌이지만서도…… 대체 Leader가 뭘 한다는 겁니까?"
"그걸 알 수 없어 두렵네. 그가 달라지지 않았을지, 혹은 변했을지……. 일단, 츠키나가 군은 리츠를 Knights에 묶고자 하네. 그렇다면, Knights임을 자각할 수 있는 장소에, 리츠를 데려갔겠지."
세 사람은,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고, 동시에 읊조렸다.
-
꿈을 꿨다. 마~군이, 무언가 계속 말하려 하고 있어. 나는 마~군에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아. 그래서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어. 그럼에도 마~군은 끊임없이, 나에게 닿길 바라면서, 울먹이고 있었어.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걸 버티면서, 내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내고 있었어. 아, 이제, 조금씩 들리는 것 같아. 마~군. 나 여기 있어. 리츠, 리, 츠, 릿…츠…?
"릿츠~! 아, 이제 정신이 들었나봐!"
사쿠마 리츠는 이상한 장소에서 눈을 떴다. 눈을 비비고 다시 둘러 보니, 이상한 장소는 아니었다. 이 곳은 Knights가 자주 모이곤 하는, 스테이지였다.
"……마~군이 아니었네, 임금님."
"어랏, 혹시 실망했어? 유감이지만, 네 친구는 올 수 없어♪"
"아무리 임금님이라도, 지금 깨운 건 용서 못하겠어. 마~군이 말하는 걸 들어야 하니까, 깨우지 마."
리츠는 레오를 게슴츠레 째려봤다. 레오는 검지를 인중에 받치고는 리츠가 하는 행동들을 지켜보았다. 리츠는 스테이지의 위에서 몸을 말고 누웠다. 비가 내리는 밤은 쌀쌀했지만, 리츠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음, 좋아좋아! 인스피레이션이 솟아오르는걸! 사랑한다, 릿츠♪"
"조용히 해, 임금님."
"기다려, 곡을 적을 테니까! 명곡이 나올 거야! 이 곡은 말이야, 릿츠를 위한 곡이야. 이름은, 그래…… 망상장애가 좋을까?"
레오는 메모장에 곡을 적는데 열중했다. 리츠는 몸을 일으켰다.
"지금 뭐하는 건데?"
"나중에 릿츠가 이 곡을 불러주면 좋겠는걸. 오오, 나중에 모두에게 한 곡씩 만들어줄까! 고유한 무기 같은 느낌도, 나쁘지 않아."
"임금님!!"
리츠가 소리쳤지만, 레오는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줘! 10분, 아니 1분, 아니 10초! 자, 이제 계속할까, 리츠?"
"이제 나가주면 안 될까? 여기서 잘 테니까."
"미안하지만, 릿츠. 아니, 미안할 일은 아닌가♪ 난 너를 방해하러 왔어."
"방해라니?"
리츠는 적대적인 눈빛으로 레오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종잡을 수 없으면서도, 평소와 다른 섬뜩함을 품은 레오의 모습에 리츠는 불안감을 느꼈다. 평소와는 달랐다. 이젠 그가 정말로 미쳐버린 건 아닌지 두려울 정도였다. 스테이지의 불빛은 침침했다. 익숙한 장소임에도, 리츠는 오한을 느꼈다. 그러나 낯설지는 않았다. 리츠는 그를 오래도록 지켜봤고, 그가 해왔던 일들, 그가 저질러왔던 죄를, 그 눈으로 기억했다. 리츠는 방관자였고, 레오는 집행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리츠가.
"자, 릿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잊어버리면 안 돼. 임금님의 명령이야♪"
그는 리츠를 보며 스스럼없이 웃었다. 군림하고자 하지는 않았으나, 자신도 모르게 도취하고 만다. 벌거벗은 임금님일 뿐이지만, 임금님이란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억눌러야 할 감정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리츠를 위해.
"네 친구는, 학교에 가다가, 릿츠를 깨우는 걸 깜빡해버렸어. 그 전날에 밤을 새버려서, 비몽사몽 나온 모양이야. 그래서 뒤로 돌아서, 릿츠의 집으로 가려고 했어. 그런데 하필, 네 친구는 횡단보도 위에 서 있었고,"
"그, 그만. 임금님. 그만해."
"그대로, 도로 오른쪽으로 꺾어들어오는 차에……."
"그만하라니까!"
리츠는 레오를 제지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방금 일어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이 가벼웠다. 지금은 달이 허락된 시간이었고, 리츠는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를 이제서야 보았다. 리츠는 자고 있지 않았다. 마오가 보이지 않게 된 뒤로, 현실에서 눈을 돌렸을 뿐이다. 리츠의 몸은 스스로가 생각한 이상으로 컨디션이 좋아서, 앓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레오의 멱살을 비틀 수 있었다.
레오의 충격 요법은 효과가 있었다. 리츠는 세상을 보아야 했다. 소중한 소꿉친구가 죽은지 며칠이 지났고, 그 원인에는 자신이 개입되어 있다. 자신은 소꿉친구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고, 현실을 부정한 채, 이렇게 처박혀 있었다. 분노할 대상은 레오가 아니었다.
이사라 마오를 부정한 사쿠마 리츠다.
"릿츠, 이 손 놔."
레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거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리츠는 힘없이 팔을 떨구었다.
"네 친구 이사라 마오는……, 아. 이젠 내가 말할 필요도 없겠네. 그렇지?"
"임금님, 어째서야……."
리츠는 몸을 떨며 레오와 눈을 맞추었다. 이토록 뜨겁고 강렬한 감정을, 리츠에게서 느낀 적이 있었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레오는 흥미를 느껴버렸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리츠는 절규했다. 이 순간에도 떠나버린 소꿉친구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이런 거, 나답지 않은데. 마~군이 보면 놀랄 텐데. 이런 거, 원하지 않을 텐데.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다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서 좀 더 자고 싶었다. 이런 임금님은 보고 싶지도 않고,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마오가,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네가 부서지면, 모두를 지킬 수 있으니까."
그것이 임금님의 대답이었다. 그의 웃음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밝았다. 노이즈가 일었다. 이대로 부서져 버릴까. 이제는 없는 마 군과, 앞으로 살아갈 Knights. Knights는 마 군의 죽음에 애도를 표할 뿐, 그의 죽음 때문에 Knights의 활동이 위험하거나, 미래가 불투명해지지는 않는다.
오직 나 때문이다. 내가 없다면, 내가 부서진다면, Knights는 달라지지 않는다. 임금님은, 이미 그렇게 했으니까. 불변을 위해 바스라졌으니까. 지금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
임금님이 원하는 것, Knights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마 군이 원하는 것.
이젠, 모르겠어…….
선명하게 빗줄기를 비추는 달빛이, 어지럽다.
"여기입니까! Leader!"
츠카사가 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현장은 놀랄 만큼 고요해서, 벽들이 끼어들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그의 뒤를 이어 이즈미가 들어왔다.
"곧 끝나는데, 무슨 일이야? 스오, 세나."
레오는 무신경하게 웃었다. 이즈미는 레오가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Knights의 리더인 레오였고, Knights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던 레오였다. 그 시절의 레오와 다르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의 기시감이 이즈미의 손에 닿았다. 이 기시감을 어떻게 다룰지는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를 따를 것인가, 그에게 반할 것인가.
"……임금님, 이건 잘못 됐어."
이즈미는 레오의 팔을 붙잡았다. 리츠는 레오의 앞에 그저 서서,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이즈미는,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어라, 혹시 반역하는 거야?"
"이런 건 간언이라고 하는 거야."
이렇게 말해도, 자신도 과거를 방관해 왔던 사람이다. Knights에서 무너졌던 수많은 꿈들에게 용서를 구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이 녀석들만큼은 구하고 싶었다.
벌거벗었음을 알아버린 왕은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왕국을 위해서라면 살갗까지 한 꺼풀 더 벗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왕이 망가질 뿐이다. 민중에겐 역겨울 뿐이다. 이 희생은 바른 게 아니야, 레오. 그러니까 나는 너를 막는다. 너는, 여기서 무너져도 좋을 폭군따위가 아니니까.
"이런 식으로 쿠마 군을 Knights에 잡아둘 수 있을 리 없잖아. 현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쿠마 군이 Knights에 머무를 이유는 없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세나? 이건 심판이야"
"레오, 너……."
"유구한 전통이잖아?"
레오는 이즈미를 뿌리쳤다. 그리고 아직 고개를 숙이고 자기혐오에 빠진 리츠의 어깨를 손날로 두드렸다.
"사쿠마 리츠. 너를 여기서, 기사왕이 심판한다."
"……누가 심판하겠다는 건데?"
불쾌한 금속음이 났다. 리츠는 레오를 밀치고, 손에 든 십자가 모양의 송곳을 자신의 턱끝에 가져다댔다. 금방이라도 그의 턱을 꿰뚫을 송곳이 흔들렸다. 눈물을 한 방울 흘렸다.
"이걸 바라진 않을 테지만, 임금님."
"릿츠, 기다려!"
"날 심판하는 건 나야. 네 손에 맡길 리가 없지."
레오는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 영감으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 재가 될 한 소년의 끝이 여기에 있었다.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의 눈에 리츠는 마치 태양빛을 받아 스스로 타오르는, 결의와도 같았다.
"지금 갈 테니까, 마 군."
리츠의 몸뚱아리가 나가떨어졌다.
츠카사는 몸을 날려 리츠의 자살을 저지했다. 둘의 몸이 뒤엉켜 쓰러졌다. 츠카사는 쓰러진 리츠가 어지러워하는 사이 그의 손에 들린 송곳을 쳐내고, 리츠의 멱살을 잡았다.
"감정에 휘둘려 생명을 하찮게 여기다니, Knights로서의 자각이 있는 겁니까!"
"Knights로서의 자각? 아하하, 뭘 말하는지 모르겠어, 스 쨩."
"Knights잖아요! 당신도, 엄연한 기사입니다!"
"……임금님 덕분에, 결정했어. 난 탈퇴할 거야. 이런 학원, 다닐 이유도 없어. 이젠, 살아갈 이유도 없어."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죄다 Crazy man이군요……!"
츠카사는 화가 잔뜩 나서는 레오를 째려봤다. 그제서 정신을 차린 레오가 시선을 피했다.
"어떻게 해야 돌아올 건가요, 리츠 선배? 당신이 없다면, Knights는, 날개를 잃습니다. 리츠 선배는 중요한 전력이에요."
"그건 알아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날 내쫓으려 한 건 임금님이고."
"Leader가 어떻게 생각하든, 저는 반대입니다."
"많이 컸네, 스~쨩."
리츠는 츠카사의 손을 떨궈내고 일어섰다. 츠카사도 그를 따라 일어났다.
"선배들 덕분입니다."
"하지만 임금님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할 거야? 날 지켜서 싸우기라도 할 거야? 아니면 반대로 임금님을 쫓아낼 셈?"
"그, 그건."
"이제부터 생각하면 되는 게야."
모두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안즈와 아라시의 부축을 받아 레이가 걸어 오고 있었다.
"저지먼트라면, 꼭 지금이 아니어도 되네. 츠키나가 군은 리츠의 혼을, 아이돌로서의 꿈을 저지먼트로 깨닫게 해주고 싶었겠지만, 애석하게도, 상상 이상으로 그 아이에겐 이사라 군이 소중했던 게지."
"왜 형님이 떠들고 있는 거야? 형님의 입에서 마~군의 이름을 듣고 싶지 않은데."
"리츠야. 네겐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위험한 일은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츠키나가 군이 저지먼트를 선언한 이상, 실행해야 하지 않겠나. 나중에 시간을 잡아, 제대로 실행하는 건 어떤가?"
"난 이 학원을 나갈 거야. 필요 없다고."
"리츠 쨩,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생각을……."
리츠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Knights가 있어도! 홍차부가 있어도! 유메노사키의… 모두가 있어도…… 응? 마 군은, 내가 없으면 안 돼. 어디에 있든지, 마 군이 없는데 뭐가 긍지야, 뭐가 기사야! 나는 다른 멤버들처럼 그런 거에 쓸 힘도 없고, 임금님처럼 희생할 자신따위도 없어! 난 저지먼트에 참가하지 않을 거야. 내가 저지먼트에서 승리하면, 자연스럽게 Knights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임금님? 미안하지만, 난 저지먼트에 참여하지 않을 거야. 이 학원도, 곧 떠날 거야."
리츠의 외침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리츠도 목이 나가라 소리치는 자신이 낯설었다. 이렇게 목이 메고, 이렇게 눈물이 흐르는데도, 마오는 돌아오지 않았다.
-
리츠는 다음날 마오의 장례식에 들렀다. 마오의 어머니는 리츠를 끌어안고 우셨다. 자신을 원망할 거라고 생각했던 리츠도,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이제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마오의 표정이, 어색할 정도로 밝다.
"……릿군, 뭐하는 거야?"
리츠는 유메노사키의 옥상에 섰다. 학원은 여전히 조용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운동장이 넓었다. 리츠는 난간에 기대어서 한숨을 쉬었다.
"있지, 마~군.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되지?"
"뭐라는 거야. 릿군은 항상 내가 챙겨주고 있잖아?"
"헤에, 잘도 그런 말을 하네……. 내가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주제에."
"그런 거 아니거든. 그래서, 지금부터 뭘 할 거야?"
"글쎄…… 굳이 말하자면, 퇴학식?"
리츠는 난간을 넘어갔다. 난간을 넘어서면, 발끝이 허공에 남을 만큼의 공간이 있다. 차게 흐르는 바람이 신경을 찌릿하게 자극했다. 돌아보면,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기억에, 마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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